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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삐빅, 검증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by 8월 준 2023. 10. 29.

 

 

 

 

그녀는 스스로 함정을 파고 들어가기 바빴다.

'졸업하고 쉬는동안 뭐하셨어요?' '워홀 기간 동안 혼자 경험하고 자아성찰한 내용이 많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와 같은 평상시에 받아보지 못한 스스로를 향한 궁금증에 당황한 그녀는 외려 먼저

'실은 공기업 준비를 잠시 하다가..' '청소 일을 하면서 청소하는 분들의 배려를 느꼈습니다. 자고로 청소란..'

과 같은 대답을 내어놓으며 자살골을 한 5번 정도 넣었다. 한 면접에.

 

그게 가능하냐 싶을 수도 있지만, 가능하다.

스스로와 스스로의 경험에 대한 정확한 정리와 이해가 부족하고, 생각을 언어화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과거 경험이 그냥 왠지 모르게 넌덜머리가 나서 항상 도망치고 싶고, 미래만 그리는 인간에게는.

그녀는 그 모든 검증의 질문들을 가볍게 불통했다.

 

 

천성적으로 다 덮어두고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는 습관이 있던 그녀는 서서히, 쌓여가는 실패 경험과 함께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아니면 그 개운했던 기분은 잠시, 달라지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 이내 눈두덩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갈수록 뭔갈 하지 않으려는 성정이 심해졌고, 그녀의 필살기인 언어능력을 더 잘 보여주고자 응당 해야하는 노력조차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것으로 느껴졌다.

'이것보다 더 게을러질 수 있을까', '이것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했던 본인의 상태가 정말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고, 심지어는 그 상황에 대해 어떠한 노력조차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삶은 정말 고역이었다.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렇게 삶의 주도권을 놓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는 많이 노력할 힘이 없었다. 그녀의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늪에 빠진 그녀는 그렇게 많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에 각 분야에 대해서 조금씩만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매우 쉬운 일을.

면접에 관해서는 면접 또는 직무, 산업에 대한 조사를 하루 한 시간씩 하고, 다이어트에 관해서는 10시 이후 금식, 야채와 고기를 사용하여 직접 음식을 해먹기로 했다.

또 갱생 프로젝트에 운동이 빠질 수 없으니까, 러닝 크루 모임이 있는 날은 모임에 참석하고, 그러지 않는 날은 천변에 나가 최소 20분 걷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꾸준히 상기시켜주었다.

 

그녀는 갓 태어난 새끼 기린마냥 세상을 향해 아장아장, 한 걸음씩 나아갔다.

나아가기만 한 건 아니다. 다이아몬드 스텝을 그리듯 뒤로도 여러번 발자국을 찍었다. 한 번씩 완전히 이전 습관으로 회귀하기도 하면서 무너져내렸던 것이다.

그런 날이면 그냥 유튜브를 켜고 쇼펜하우어의 명언 영상을 들으며 '빨리 잠이나 잤다'. 그리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면 너무 어색할지라도, 결심했던 내용들을 다시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2주쯤 지났을까?

그녀는 저번주에 기도하는 마음 반, 미련 없는 마음 반으로 가서 본 면접에서 합격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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