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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문장수집

(문장수집) 불안 - 알랭 드 보통

by 8월 준 202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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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은행나무

 

한줄 소감: 처음에는 위안이 되었으나.. 갈수록 눈에 들어오지 않아... (짧은 내 독서가방끈/능력치 때문,,)

 

***

 

거만한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생기기 때문이다(어떤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를 좋아하는 것도 싫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냉정하게 내 마음을 진단해보면 그러고 있음..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기대를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철거해버렸다. (귀족사회 신분제 아래에서는 신분상승이나 성공에 대한 기대가 '가로막혀'있었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물질적 평등을 성취할 수단이 없는데도 이론적으로는 평등하다고 느꼈다.

토크빌은 말한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자의 쾌락에 희망과 질시가 섞인 눈길을 던졌다." 

가난한 시민은 부자 시민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했으며, 언젠가는 그들의 뒤를 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늘 틀린 것은 아니었다. 초라한 배경에서 태어났지만 큰 부를 일군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예외가 규칙이 될 수는 없었다.

미국에도 여전히 최하층 빈민이 있었다. 그러나 귀족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과는 달리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기대를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또 어떤 일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모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걸고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만 수모를 느낀다.

무엇을승리로 해석하느냐, 실패로 간주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다.

 

 

자존심 = 이룬 것 / 내세운 것

 

이 방정식은 우리의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도 암시한다. 하나는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기대의 좌절에 따르는 위험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더 심각해졌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영원한 삶의 짧은 서곡에 불과하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성공이 영원한 삶을 배경으로 보면 순간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질투심으로 흐르는 마음을 다독일 것이다.

 

 

삶은 불가피하게 고난일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믿음은 수백 년동안 인류의 중요한 자산이었으며, 울화로 치닫는 마음을 막아주는 보루였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근대 사회는 첫 번째 방법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욕망에 줄기차게 부채지을 하여 자신의 가장 뛰어난 성취의 한 부분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와 같다고 여겼지만 우리보다 더 큰 부자가 된 사람과 실제로나 감정적으로나 거리를 두면 된다.

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발전한 사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보다 높아진 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부유하게 해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는 ㅗ습 사이에 늘 간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원시의 야만인보다 더 심한 궁핍을 느낄 수도 있다.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세 계급-농민, 성직자, 귀족-으로 이루어진 계급 구조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이 세 계급이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서양 중세 혹은 근대 이전) 따라서 가장 가난한 계급의 가치도 높게 평가되었다.

상호의존 이론에 따르면 농민은 귀족이나 성직자나 똑같이 중요했으며, 따라서 존엄성도 똑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은 각자의 자리에서 맞는 역할을 하고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간다. 

귀천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상호의존이나 사회의 유기체성은 작동하고, 유효하다.

 

 

그는 <농부 찬가Der Bauern Lob>(1450년경)라는 시에서 신의 피조물 가운데 농민만큼 고귀한 존재는 없다고 읊었다.

 

 

"자연은 나에게 '가난해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 '부자가 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자연은 나에게 '독립적으로 살라'고 간청할 뿐이다." -샹포르 <격언집 Maximes et Pensées>(1795)

 

 

"칭찬을 받으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다더냐? ..."

마르쿠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어떤 문제이든 다수의 의견에는 혼란과 오류가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샹포르는 그의 이전과 이후의 여러 세대의 철학자들의 염세적 태도를 반영하여 이 점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했다.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사회적으로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너 이 시기에 이거 안 하면 큰일나, 라고 하는 것에도 혼란과 오류가 가득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며 자학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들의 의견이 과연 귀를 기울일 만한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의 정신에 존경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근데 이런 정신에 너무 취해서 24기 광수처럼 되진 말자 ^^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런 이상(자신이 사는 사회의 이상)이 돌로 만들어져 굳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이데올로기적 진술이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진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든 가장 힘 센 인간과 커다란 자연-큰 사막, 높은 산, 빙하와 대양-사이의 차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주 큰 자연을 보면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우스울 정도로 작아 보이는 것이다. 

광대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회적 위계 내에서 우리가 하찮다는 느낌은 모든 인간이 우주 안에서 하찮다는 느낌 안에 포섭되면서 마음에 위로룰 얻게 된다.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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